본문 바로가기
여성학

자지를 자지라 하고, 보지를 보지라 하자

by Seok-Bong Kangs 2021. 1. 21.
728x90
반응형

국어에 ‘자지’와 ‘보지’와 ‘씹’라는 말이 있는 이상, 굳이 ‘음경’과 ‘음문’이나 ‘성교’라는 말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전문서적에서도 말이다.

 

어떤 언명이 학문적인가의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단지 개개 술어의 음성 형태만을 문제 삼는 일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무엇보다도 단지 외래어만이 학문적 술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극히 순진한 일이다……따라서 학문적인 듯한 학술 용어들도 흔히 해당 언명의 학문적인 정확성을 조금도 잃지 않은 채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일상적인 단어들로 옮겨 볼 수 있다………이에 대한 한 가지 좋은 예를 의학자들의 전문 언어에 있어 찾아볼 수 있다. 의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많은 학문적 기술어들을 우리는 즉시로 일상적인 단어들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데, 그것들은 명백히 그에 해당하는 일상적 규정이 존재하는 신체의 일부 또는 병증세 등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의학 지식의 발전에 따라 물론 어떤 일정한 단어가 의학적 사태를 나타내기에 더 이상 정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날 수는 있다……그러나 만일 어떤 일상적인 용어와 라틴어 식의 학술 용어가 사실상 동일한 의미라면, 그 둘 다는 앞서와 같이 시대에 뒤떨어진 상태란 점에 있어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그러므로 어떤 학술 용어가 모국어의 단어인지 아니면 외국어의 단어인지의 여부는 분명 중요치 않다. 오히려 여기에 있어서는 단지 그 ‘맥락’, 즉 그 텍스트의 관련성이 중요할 따름이다.

 

이 말을 김용옥 교수는 좀 더 쉽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 하였다. 

 

우리는 남자의 성기 ․ 여자의 성기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매우 단순하고 아름다운 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도덕적 타부라는 고상한 이유로 고상한 자들의 언어에서 지속적으로 회피되고 있는데 그 말은 “자지”와 “보지”라는 것이다. 자지와 보지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어떠한 표현에도 양보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을 가지며 단순하면서도 풍부한 의미의 면적을 가진다.……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보지 ․ 자지는 양보할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하나의 약속의 체계일 뿐이며 음사(淫辭)가 아니다……어느 단어에도 양보할 수 없는 순수 우리말인 “씹”이란 말이 “성교”와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면서도 그렇게도 저주의 대상이 되는 욕설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존재 속에서 사회적 금기(social taboo)가 소외(Entfremdung)화 되었다는 매우 중요한 의식적 사실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좋아하면서도 또 우리에게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규약에 의하여 싫어하고 떼어놓아야 할 것으로 우리의 존재로부터 소외시키는 과정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두 분의 학자의 말만으로도 충분하기에 두말 하지 않겠다. 더 있어 보이고 건전해 보일 것 같아 한자어나 영어 쓰지 말고 그냥 고유의 우리말을 사용하자. ‘자지’ ‘보지’ 그리고 ‘씹’ 얼마나 좋은 우리 표현인가? 성기나 성교를 더럽게 여기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으로, '음경‘, ’음문‘, ’성교‘라는 말로 세례를 줄 것은 무엇인가?

이들은-장 보드리야르의 책 『시뮬라시옹』의 「충돌」 장의 말을 빌리자면- 성적 격렬함과의 내밀성을 나타내는 말이 없고, 기능적인 언어만이 있다. 

 

헬무트 자이퍼트, 전영삼 역, 『學의 방법론 입문1』, 교보문고, 1992, p80~83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통나무, 1992, p28~29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