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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인문학의 심장을 가진 의사를 기다리며

by Seok-Bong Kangs 2020.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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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의학은 서서히 비인간화되고 있다. 의료 처치는 이제 노동 집약적이지 않다. 오히려 매우 값비싸고 자본 집약적인 산업이 되었다. 환자는 거대하고 종사하는 인력이 지나치게 많은데다가 대단히 잘 돌아가는 비인격적인 조립-또는 해체-라인 위에 놓인 물건으로 전락했다

.

그리고 이 톱니바퀴의 희생물이 되는 사람은 여성인 경우가 훨씬 많다.

 

“로스쿨 첫 졸업생이 배출되는 2012년, 율촌이 변호사를 선발한다면 저는 법학과 출신보다는 다른 전공 출신을 뽑겠습니다.” 국내 6대 로펌 가운데 하나인 법무법인 율촌의 우창록 대표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2007년 10월 31일 서울대 법대 초청 강좌에서 경쟁력 있는 법조인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경제학이나 사회학 등의 인문학 소양을 가진 학부생 출신의 로스쿨 졸업생이 비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인즉 육법전서만 달달 외우는 법학생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한 법률인이 규범을 적용할 현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배고픈 학문이라고 여겨지던 대학의 철학 강좌가 2008년도 초부터 수강생들의 증가와 더불어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의사 ․ 변호사 ․ 작가 ․ 투자은행가 등 다양한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기초교육으로서 철학을 선택하였다. 여기에는 사회가 점차 복잡 다단화 되어감에 따라 단편적인 실용지식보다는 작문, 분석, 해석, 비판적 사고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데 있다. 아울러 시대가 그런 소양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철학이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학문이라는 인신에서 비롯되었다.  

 

필자는 대형 종합 병원 원장 중에서도 그런 조언을 할 분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법률이 다뤄야할 분야가 다각화되고 세분화되는 만큼 의료계도 그렇기 때문이다. 의용공학의 발달로 이제 의사들에게는 의술을 대한 전문성을 넘어 의용공학이 다루는 물리 ․ 전기 ․ 전자 ․ 방사선 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게 된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그러나 이제 사회는 ‘인문학의 심장을 가진 의사들을 기다려진다는 생각이 이 책을 준비하면서 필자의 뇌리 속에 깊이 남았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2007년 9월 19일자 뉴스위크 한국판에서 반가운 기사를 만났다. 미국의 많은 의과대학들이 인문계열 전공자를 선호한다는 기사였다. 의료 ․ 의용 기술의 발달로 의술을 적용하는 일은 한층 복잡해졌으나 이제는 의과대학도 단순히 생물학이나 화학을 전공한 학생보다는 좀 더 광범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학생을 찾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분석적인 능력과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에서다. 

‘인문학’을 뜻하는 ‘후마니타스’라는 개념은 인간을 가리키는 라틴어 ‘호모homo'에서 파생되었고 ’인간성‘을 의미한다. 오늘날 ’인간성‘ 혹은 독일어의 ’후마니태트(Humanität)'는 어떤 사람에게 친절하다거나 도와줄 채비가 되어 있는 태도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후마니타스’ 개념이 로마 사람에게서 생겨났을 때는 이와 다른 뜻이었고, 르네상스 인문주의자 역시 원래의 로마적 의미로 이해했다. ‘후마니타스’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사람은 기원전 1세기의 키케로였다. 그는 3세기부터 지중해 연안 대부분 지역에서 전파된 그리스 교양을 가리키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했다. 

 

키케로의 견해에 다르면 이 교양은 대단히 폭넓은 기초적 앎에 근거한다. 우리는 우선 어떤 사회적 조직, 그러니까 가정이나 민족의 구성원이 아니라 인간이다. 우리는 이 인간이라는 것, 곧 ‘후마니타스’를 누구나 공통으로 지닌다. 우리는 우리 모두를 인간으로 인식하는데, 언어의 관점, 다시 말해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면서 서로의 행위애 대해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성적으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이라는 사실의 공통적인 기초다. 만일 우리 삶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려면, 키케로의 견해에 따라 이성적으로 대화나는 데 아주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어 ‘알레테이아(Aletheia)'는 ’은폐되지 않음‘, ’감추어져 있지 않음‘을 뜻하지만, 보통 ’진리‘를 뜻한다. 이런 감추어진 진실을 찾는 방법 중 하나로 헤카타이오스 같은 수집가이자 연구자는 전해지는 저술들은 없지만, 경험으로 얻은 각종 자료를 수집해, 그 결과를 최초의 산문 저술로 남겨 놓았다. 사람들은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찾아 나섰다. 이 과정을 ’히스토리아(Historia)', 즉 ‘조사한 것을 망라 한다’, ‘조사해서 안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의학도 그리스 세계, 구체적으로 말해서 헤로도토스가 태어난 할리카르나소스와 마주한 코스 섬에서 시작되었다. 의사들의 선서로 유명한 히포크라테스와 그 제자들은 기원전 5세기 중엽 이래 아직은 학문이 아닌 의술이라 해야 할 영역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경험들을 끌어 모았다. 그러다 이들 학문 이전의 상태에서 질병을 다루며 얻은 여러 결과물을 단 하나의 정돈된 의술로 융합시키면서, 의학은 학문으로 이행되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중요한 최초의 학문적인 개념들은 실재하는 것을 자세히 조사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을 포괄적인 중심 사상에 비추어 전체로 해석하면서 생겨났다. 예컨대 히포크라테스 학파가 기원전 5세기에 코스 섬의 아스클레피에이온에서 학문적인 의학을 향한 첫걸음을 뗐을 때, 그들은 초기 철학의 거대한 구상을 뒤따랐지, 수많은 사례를 조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이 질병 사례를 가능하면 많이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경험적 검토는 뒤로 미루었다.

 

그러던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현상의 구제’라 하여, 경험적인 현상을 경홀히 여기지 않는 학풍을 보이기 시작했다. 의학은 수천 가지 질병 사례를 조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알렉산드리에서 동물과 사람을 해부하고 이것을 토대로 최초의 경험적 해부학을 발달시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혐오감을 무릎쓰고, 인간 신체의 객관적인 상을 얻고자 미켈란젤로, 폴라이우올로와 함께 시체를 해부했다. 그 당시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30구의 시체를 해부해, 근대 해부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처럼 이제 의료계는 전인적(全人的)인 의과대학생을 필요로 한다. 쉽게 말해서 환자가 두통을 호소할 때 뇌졸중의 전조 증상일지 모르니 MRI를 권하기 전에 두통과 관련된 질병들-두통과 관련된 질병만 나열해도 수십여 가지다- 그리고 환자의 병력과 가족력 등의 히스토리아를 살펴보고 환자를 전인적인 대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조만간 국내에서도 미국과 같은 의학대학원이 생긴다. 이에 따라 의학대학원 과정 절반은 의예과 입학 정원으로 나머지 절반은 일반 학부 졸업생으로 채워진다. 이조차도 의사를 모두 대학원 단계에서 선발하는 방식에 대해 일선 의대의 불만이 있어 ‘보장형’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이라 추후 의대 신입생 총수에는 변화가 없다. 어찌되었든, 전문대학원을 나온 의사들이 상존상생(常存常生) 하게 된다.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벤다푸디 박사 등은 2개 주요 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한 결과 화자들은 의사의 기술적 지식이나 실력보다 병상 곁에서 보여주는 매너를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들은 의사의 정직함, 연민, 환자에 대한 존중감 등을 이상적인 의사를 정의하는 자질들로 꼽았다. 반면에 의사들의 기술적 전문 지식은 환자들의 평가에서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또 환자들은 의사들에게서 겪은 최악의 경험으로 건방짐, 부정적 태도, 환자의 증세를 논의하면서 보여주는 냉담함을 꼽았다. 환자들이 의사의 자질 중 가장 높게 평가하는 자질로는 ‘꼼꼼함’을 들었는데, 치료 절차를 충분히 설명하고 회복 기간에 환자들을 계속 추적하는 의사를 가장 높이 평가했다. 우리 의료계에도 그와 같은 인문학의 심장을 가진 의사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로버트 S 멘델존, 『여자들이 의사의 부당 의료에 속고 있다, Male practice : How doctor manipulate women』문예출판사, 2003,

2007년 11월 1일 한국경제

2008년 4월 7일 월요일 중앙일보

클라우스 헬트, 이강서 역, 『지중해 철학; Treffpunkt Platon』, 효형출판, 2007

2006년 1월 17일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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