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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철학은 죽음의 연습

by Seok-Bong Kangs 2021.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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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연습”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든 덧없이 유전하는 비철학적 현실을 떠날 때 비로소 철학적 지혜를 성취할 수 있다는 현실도피적이고 내세지향적인 이상주의와는 무관하다.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초연한 태도는 결코 현실 감각의 결핍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었다. 기꺼운 죽음에 대한 호소는 오히려 현실에 대한 철저한 재인식을 요청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인간의 무력함 속에서 죽지 않는 강력한 불사의 신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인간은 불사의 존재와 죽어야 하는 존재 사이의 차이를 거듭 성찰해야 한다. 거리 두기는 인간으로 하여금 성찰하게 한다. 이런 의미로 델피의 아폴론 신전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사멸하는 존재가 불사의 존재에 대한 간격을 두는 것이다. 이 사실을 성찰할 때에라야 인간을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동원할 힘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서 무력한 존재, 곧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이 드러난다.

 

‘사멸하지 않는 신’과 달리 일반 동식물이나 인간들 같이 신체(sōma)를 가지고 있어 결국 ‘사멸할 수밖에 없는 유한자를 의미하는 말인 ’사멸하는 것들(ta thnēta)'이라는 단어는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육체를 떠난 영혼의 피안에 자리한 이상향 속에서 정화를 경험할 때에 인간은 참된 행복을 맛볼 수 있다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혼이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죽음을 훈련해야 한다는 놀라운 결론에 이른다. 한마디로 ‘철학은 죽음의 훈련’이다.

 

자양 강장제의 이름인 ‘박코스(Bakchos, 라틴어로 Bacchus)는 오늘날에도 고대 신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다. 누구나 그를 포도주의 신이자, 도취의 신으로 알고 있다. 원래 동방의 신이었으나 그리스 신들의 계보에 편입되었다. 올림포스에 사는 불사의 신들과 달리 디오니소소는 땅에 살다가 죽어야 하는 인간들의 운명과 가깝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우리가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고조되어 나타나는 신이다. 디오니소스의 이런 양면성 속에는 땅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땅은 어두운 폐쇄의 영역이면서 우리가 그 안으로 숨는 곳이다. 죽어야 하는 인간의 실존이 갖는 부정적 특징들은,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삶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양상은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가면을 쓰고 그를 숭배하는 의식에서도 담겨 있다. 삶의 동물적인 재생 능력을 기리는 의식에 죽음이 함께 깃들어 있다. 디오니소스에서 충만한 삶은 가면일 뿐, 이 가면을 통해 죽음을 대면할 용기를 갖게 한다. 

 

삶은 그 어두운 뒷면인 죽음 앞에서 밝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삶이 전개되는 공간인 세계는 삶과 죽음을 비추는 빛으로 가득 차 있다고 클라우스 헬트는 그의 책에서 말한다. 죽음은 생과 함께 이 세상 속에서 빛나고 있다.

 

이상인, 『플라톤과 유럽의 전통』, 이제이북스, 2006

플라톤, 김주일 ․ 정준영 역, 『크리티아스』, 이제이북스, 2007

클라우스 헬트, 이강우 역, 『지중해 철학 기행;Treffpunkt Platon』, 효형출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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