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성학

쌓고 허물고 쌓고 허물고-자궁이 만드는 시시포스의 신화

by Seok-Bong Kangs 2021. 3. 16.
728x90
반응형

 

우리는 배란과 함께 차고, 피와 함께 기운다. 달은 우리를 끌어당기고, 우리는 자궁을 당기고, 생리 때 복통까지 안겨준다.…사실 우리 중 대부분, 말하자면 생리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생리 주기가 달 순환 주기의 어느 시기에 해당하는지도 잘 모른다.  『여자, 그 내밀한 지리학; Woman, an Intimate Geography』p15

 

신화적으로 볼 때, 남성이 태양의 이미지를 가졌다면 여성은 달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실존주의 철학자 A. 카뮈는 『시지프의 신화』를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신이 정해 놓은 한계 속에서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인간의 운명을 굴러 떨어지는 돌을 계속해서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에 비유했다. 날마다 굴러 떨어지는 돌을 밀어 올려야 하는 인간의 쳇바퀴 운명처럼, 여성의 몸속에도 또 하나의 ‘시지프의 신화’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28일을 주기로 자궁 내벽을 쌓았다가 허물어야 하는 월경이다. 시지프야 신의 노여움을 사서 그랬다지만, 여성들의 자궁은 무슨 저주를 받아서 계속 자궁벽을 세웠다가 허물어야 할까? 아쉽게도 우리는 월경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알아도, 왜 그러는지 정확히 설명해 줄 이는 아무도 없다.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만 있을 뿐이다. 

 

생산성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운명을 타고난 남성에게 월경을 불필요한 낭비다.  그건 마치 군에서 겪었던 '진지 구축'과 같다. 군에서는 결코 사병을 쉬게 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 낸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진지 구축'이다. 그 기간이 되면 트럭 타이어에 흙과 돌을 담아 부대 주변에 담을 쌓든 쌓아 올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다시 허물었다. 또 얼마 지나 다시 쌓았다. 여성의 월경은 이와 흡사하다.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같은 일의 반복이다. 그러니 그와 같은 낭비적 생리가 가히 좋게 보일 리 없다. 

 

케티 콘보이, 나디아 메디나, 사라 스탠베리가 쓴 『여성의 몸, 어떻게 읽을 것인가?; Writing data-on your Body: Female Embodiment and Theory』는 역사 속에서 남성이 어떤 시각으로 여성의 몸을 바라보았는지를 알려준다. 

 

저자들은 많은 의학서적에서 여성 몸속 변화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많은 의학 서적들에서 월경은 남성에게 있어 ‘실패한 생산’, ‘폐기’, ‘잘못된 생산’의 의미로 그려졌다. 객관적인 의미에서 월경은 수태치 못한 난자가 버려지는, 하나의 붕괴와 퇴화의 과정일 뿐이다. 폐경은 몸에서 일종의 권위구조가 실패한 것이고, 같은 남성의 갱년기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에스트로겐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됨은 여자의 인생에서 핵심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난소가 여성 호르몬을 생산하지 못한다고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의학교재 저자들의 태도를 저자는 부당한 것으로 보았다. 월경과 임신을 가져오는 배란은 남성의 정자와 달리 이미 태아 때부터 타고 난 것이기에 재고품일 뿐이다. 위 내막도 자궁내막처럼 정기적으로 벗겨지고 대체되는데,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자궁 내막만큼은 부정적인 시각이 강했다.

 

월경은 여성이 처음으로 자궁을 체험하는 방식이며 핵가족을 이루고 있는 서양 여성이라면 평생 450~480번의 자궁을 체험한다. 평균 생리 기간에 우리는 큰 수저로 여섯 숟갈 분량, 즉 90밀리리터의 물질을 흘려 보내며, 그 중 절반은 피이고 절반은 떨어져 나간 자궁 내막과 질과 자궁 경부에서 분비된 물질이다. 

 

배아를 기다리던 자궁 내벽은 붕괴하고 벽지처럼 떨어져 나간다. 우리는 난자의 성숙에 발맞춰 조직과 양분이 공급되어 자궁 내막이 부풀어오르는 동화 작용의 시기, 월경 주기의 전 단계에 이를 유지시켜줄 임신과 착상이 일어나지 않고 자궁 내벽이 아기에게 양분을 공급할 일이 없다면, 자궁 내벽을 씻어낸 물이 흐른다.

 

월경 주기가 28~30일의 소위 정상적인 월경 주기가 아닌 경우, 의사는 문제를 제기할지도 모르겠지만, 여성 호르몬 주기의 타이밍을 세밀하게 연구해오던 시간 생물학자 윌리엄 흐루셰스키는 여성의 월경 주기가 짧게는 18일부터 길게는 36일까지 지속되는 것이 극히 정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월경 시작일부터 배란일까지의 일수가 상당히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은 월경 주기 중 3일부터 14일 가운데 아무 때나 배란을 하게 된다. 일단 배란이 되면 월경이 시작되기까지의 일수는 항상 14일이 되는 경향이 있다.

 

자궁 내막에서 혈액이 나오는 기능이 원활하지 않는다면 하루는 월경량이 많다가 다음 날은 월경량이 적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난소 낭종으로 인해 월경 시기가 불규칙할 수도 있다. 난관 결찰을 하면 월경이 더욱 불규칙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나 부전증, 쿠싱병, 하수체 기능 부전증처럼 월경 시기를 불규칙하게 만드는 질병들도 있다. 코르티솔, 디곡신, 항응고제(와르파린), 항콜린 작용약, 벤조다이아제핀(발륨, Ativan)처럼 두뇌에 영향을 미치는 약품과 프로잭과 에펙서 같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 물질(SSRI)을 비롯해 조제약 중에도 월경 시기를 불규칙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월경 주기 내내 출혈이 있거나 조금씩 피가 비친다면 그 원인이 피임약, IUD(자궁 내 피임 기구), 프로게스틴 사용일 경우가 많고, 가끔은 섬유종이나 낭종 때문일 때도 있다. 후자의 경우 출혈과 골반통이 나타나는데 보통 한두 달 후면 절로 사라질 것이다. 폐경기 전 몇 해 동안은 가끔씩 월경을 건너 뛰는 것도 정상이다. 또 심한 운동과 스트레스, 체중 변화, 난소 낭종이 있어도 월경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경구 피임약 중에는 안드로겐 함유량이 많아 월경을 건너 뛰거나 수염이 생기게 하는 것도 있다. 심한 출혈의 원인은 유섬유종이나 자궁 확대일수도 있지만, 보통은 에스트로겐 과다여서 자궁이 계속 성장하도록 자극하는 아주 단순한 문제 때문이다. 체중 증가도 심한 출혈과 어느 정도 상관 관계가 있다. 에스트로겐이 많을수록 자궁 내막은 더욱 자극을 받아 혈액이 많은 내막을 성장케 하고, 이에 따라 출혈도 더욱 심해진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