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체육시간. 보건 선생님이 들어와 성교육을 하셨지. 대뜸 이런 질문을 하셨어.
"여성이 처음 하는 월경을 뭐라 하는지 아는 사람?"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더군. 모르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건지.
그 때 내가 답했어. "초경이요!" 선생님은 맞다고 하셨고, 주변 친구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더군.
이렇듯, 월경은 시작부터 금기야. 성性이라는 어둠의 자식이 흘린 더러운 피는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터부였었지. 그날이 오면 누구나 충무공 이순신으로 변해. "내가 월경 중인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특히 초등학교 때 여짝궁의 발육은 남달라었어. 하루는 책상 밑에서 자기의 생리대를 보여주더군. 그런데 중학교 가니까. 짖궂은 남학생은 자신의 짝궁의 생리대를 꺼내 장난치기도 했어.
중학교 때 서울대공원으로 소풍을 갔는데, 갑자기 비가 와서 나와 몇몇 친구들은 인적 드문 화장실로 피했지. 몸이 마를 때쯤 음흉한 눈빛이 오가더니 여자 화장실로 걸어갔어. 아뿔사. 그 때의 그 광경이란. 피묻은 생리대들이 여기 저기 널려 있더군. 그 때는 그 광경에 압도되어 듣지 못했지만, 하나 같이 신음 소리를 내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요즘 살면서 느끼는 놀라운 변화가 뭔줄 알아?
바로 생리대 광고 모델이야.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생리대 광고 모델은 하나같이 무용수나 에어로빅 강사였어.
딱 붙는 레오타드를 입은 여자 사진 옆으로 대개 이런 카피가 적혀 있었지. 그날이 와도 겉으로 티도 안 나고 새지도 않아요. 어릴 때 어느 여성 잡지에서 일본 잡지에 생리대 착용법이 실렸다는 기사를 본 기억도 있어. 여자 모델이 착용하는 모습을 시연한 사진이 글과 함께 실렸더군.
그런데 최근에 느낀 놀라운 변화는 생리대 광고 모델이 하나같이 우리가 여신이라 칭송해 마지 않는 아리따운 여자 연예인들이야.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겠지만, 내게는 마치 상전벽해 같이 느껴진다니까. 상전벽해. 생각해봐. 여신이라 불리는 여자 연예인들이 "저도 한 달에 한번 마법에 걸려요. 생리대에 피를 흘리죠."라고 자인하는 셈이잖아. 여기서 아이러니는 여신도 하는 월경인데 대우받지 못한다는거야. 아. 그리고 또 한가지 그리스 철학에서 신은 늙거나 죽지 않는 불로불사의 존재야. 소크라테스가 "네 자신을 알라"라고 델피 신전의 신탁을 인용한건 "인간은 신이 아니다"는 뜻이지. 마법을 걸어도 부족한 판에 피의 마법에 걸리는 여신은 신이 아니지. 암튼 월경은 대우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야. 월경의 당사자인 여성도 자신의 월경을 대우해주지 않아. 귀찮고 짜증난 통과의례 정도로 여기지. 왜 하나님은 여성에게 월경을 허락하셨을까.
그래도 한가지 희망은 월경은 미운오리새끼라는거야. 월경도 백조일 수 있다는 말이지. 그런데 무조건 백조로 변하는 건 아니야. 인식의 전환, 사고의 전환이 필요해. 미운오리새끼인 월경도 백조로 변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이고. 자, 다음에 하나씩 얘기해 보자고.
'여성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성 성기에 대해 당신이 모르는 10가지 사실 (0) | 2021.03.22 |
---|---|
섹스는 위험해-여자들의 섹스북 (0) | 2021.03.20 |
쌓고 허물고 쌓고 허물고-자궁이 만드는 시시포스의 신화 (0) | 2021.03.16 |
여성의 노출과 남자의 시선, 그 상관관계 (0) | 2021.03.14 |
가장 강력한 성감대이자 신경다발인 클리토리스(음핵) (0) | 2021.03.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