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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여성의 노출과 남자의 시선, 그 상관관계

by Seok-Bong Kangs 2021.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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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인식 능력은 적어도 이상적인 상태에서는 일종의 거울이다. 인식의 이상은 존재, 실재, 진상이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주는 것, 반영하는 것이다. 감각은 가변적이며 주관적이고 상대적이어서, 진리는 진상을 인식하거나 반영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순수이성이나 사유의 상태에 이르도록 하여야 한다. 이성은 진리나 실재를 밝게 볼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이성의) 빛이다. 그리고 진리는 우리의 삶과 행동의 진로를 비추어줄 (진리의) 빛이다. 거울, 빛 등의 비유는 모두 인식을 일종의 반영 또는 보는 행위로 이해했음을 드러내준다.

 

인식을 보거나 반영하는 능력으로 본 이유는 인식의 이상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실재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 그래서 진리, 진상, 존재, 객관적인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다. eidos란 그리스어로 ‘모습’, 즉 감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대상들의 모습과 대조하여, 이성을 통해 볼 수 있는 진리의 모습을 의미한다.

 

세계나 세계 내의 대상들을 그 자체에서 파악하기 위한 우선 조건은 인식 주관의 관여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인식의 방식은 시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한 인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 중에서 주관의 관여가 최소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감각의 방식은 시각이다. 청각과 촉각에 비해 시각에서는 눈과 대상 사이에 일정한 거리가 있다. 이 거리는 주관의 관여를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플라톤과 그리스인들이 시각을 인식의 이상적인 모델로 본 이유이다. 그리스어에서 ‘알다’를 의미하는 동사는 ‘보다’를 의미하는 ‘eido'의 완료형인 ’oida'이다. 알고 있는 바는 시각적으로 본 결과라는 것이 이 어휘 속에 담겨 있는 인식관이다.

 

남성이라는 것은 남성적인 성의 산물로서 정충과 또 그것의 운반자라고 할 수 있고, 여성이라는 것은 난자와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 유기체를 말합니다. 각각의 성에 있어서 오직 그에 따른 성 기능에만 쓰여 지는 기관들이 형성되는데, 아마도 똑같은 근본 구조에서부터 각각의 다른 형태로 발전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외에도 다른 기관들, 신체 형태들 그리고 조직들의 측면에서 남성과 여성은 성에 따른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영향은 똑같은 것이 아니고 그 범위도 변칙적인데, 이것이 이른바 제2차 성징입니다. 그리고 과학은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여러분들의 감정을 혼란시키기에 적당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다음의 사실에 주목하게 합니다. 

 

즉, 남성적인 성기관의 부분을 퇴화된 형태로이긴 하지만 여성의 신체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은 또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양성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는데, 이것은 어떤 존재가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언제나 그 둘의 성을 다 지니고 있으면서 그중에서 어느 한 성의 특징이 다른 성의 특징보다 더 많은 경우입니다. 개인들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출현하는 비율은 큰 편차를 보인다는 사실에 여러분들은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아주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한 사람에게는 오직 한 가지 성의 산물-난자 혹은 정충-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이러한 요소가 결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잘못 판단하게 되어 남성과 여성을 결정짓는 것은 해부학이 파악할 수 없는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어떤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할 것입니다.

 

2007년 아트선재센터에서 흥미를 끄는 전시회가 열렸다. ‘어머니와 딸’전(展)이라는 제목으로 여성주의 미술의 감성과 힘을 보여주는 전시였다. 일본의 유명 작가 두 명과 한국의 젊은 작가 세 명이 참여해서 다양한 시각과 매체를 통해 여성으로서의 자아와 어머니의 이미지를 풀어냈다. 전시된 작품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여자 모델 한명이 대형 원피스 드레스를 입고 있다. 관람객들이 그 치마 속으로 들어가면 손전등과 노트가 놓여 있다. 관람객이 직접 손전등으로 모델의 하체를 비추어 보고 나서 느낌을 노트에 적는 것이었다. 

 

필자도 어린 시절 방바닥에 누워 있다가 지나가시던 어머니의 치마를 들추어 보던 적도 있었고, 지나가던 여학생들의 치마를 걷어 올려 본 적도 있었다. 한국 남성들이라면 다들 이런 경험은 갖고 있으리라 본다. 그 작품의 의도는 여성에 가해지는 성폭력을 의미한다고 제작자는 말했다. 동시에 여성만이 갖는 아름다움과 치명적인 유혹을 보여주면서 어머니의 치마 밑에서 경험했던 유아기의 기억까지 끄집어 내주는 다중적 의미체로써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프로이트, 임홍빈 ‧ 홍혜경 역, 『새로운 정신 분석 강의』. 열린 책들. 2003,

중앙일보, 2007년 12월 2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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